[이준행 교수의 내시경 배우기]

내시경을 배우는 지름길을 묻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어찌 비방이 있겠는가? 옳게 그리고 길게 공부하면 언젠가는 알게 되는 것. 다만 방법이 그르다면 아무리 오래 공부해도 도달할 수 없다.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오히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선배의 한 마디에서 핵심을 발견하곤 한다. 내시경을 몇 년 먼저 배운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1. 내시경 오디세이 - 나는 이렇게 내시경을 배웠다

1) 내시경을 배울 때가 아니다

내가 처음 내시경을 배우려고 시도한 것은 내과 레지던트 2년차 3월이었다 (1994년). 1년간의 험한 내과 주치의 기간을 마치고, 2년차 첫 달을 파견병원 중환자실 주치의로 다소 여유있게 시작하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내과 레지던트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부전공을 정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소화기내과를 결정한 것은 1년 전이었다. 그러나 전공의 2년차까지는 일반 내과 의사로 training 과정이 짜여 있었으므로, 소화기내과 의사로서 특별한 지식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 금요모임 (金酒會로 더 잘 알려져 있음)에서 선생님과 선배로부터 폭탄주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2년차 첫 달을 파견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나름대로는 내시경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였다.

며칠간 고민끝에 어느날 소화기내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이번 달에 꼭 내시경을 배우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허락은 당연한 일로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한 "NO". 아직 내시경을 배울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과 레지던트 2년차면 내과 의사로서의 전반적인 소양을 높여야 할 기간이지, 내시경은 나중에 배워도 충분하다는 말씀이었다. "머지 않아 어떻게 하면 내시경을 적게 할 수 있을까"로 고민할 것인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무척 섭섭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렇게 고마운 스승이 있을 수 없다. 그때 그 스승님의 말씀이 평생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훌륭한 내시경 의사가 되기 이전에 훌륭한 내과 의사가 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그 스승님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첫 경험은 1년 선배와 함께

처음 내시경을 잡아 본 것은 그 해 가을이었다. 당시에는 정식 training program이 없었으므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1년 선배에게 부탁해서 개인 대 개인으로 내시경을 배웠다. 내시경이 어떻게 생겼으며, 잡는 방법은 어떻고, 삽입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소견은 어떻게 기술하는 것인지 등등 내시경의 기본을 모두 그 선배 -- 독학에는 일가견이 있는 선배다. 후에 ERCP, sphincterotomy도 혼자서 체득한 정말 대단한 눈썰미를 가진 분이다 -- 에게 배웠다. 그리고 책을 두 권 소개 받았는데, 한 권은 일본책 번역본이었고 다른 한 권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내시경 단행본-민영일 저-이었다. 내시경 참고서가 드물었던 당시에, 두권 모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줄 곳 15년간 내시경을 해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초보자를 위하여 더 좋은 책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구관이 명관인 경우이다. (2010년 말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 아틀라스가 나왔는데 상당히 잘 되어 있다. 필자도 참여하였다.)


3) Teaching scope는 teaching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교수님들로부터 직접 술기를 배울 기회는 많지 않았다. Videoscope가 나오기 이전에 사용하던 teaching scope로는 가르치기도 어렵고, 배우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내시경 교육은 주로 집담회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매주 내시경 집담회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전공의들이 소견과 추정 진단을 말하면 교수님께서 당신의 의견을 말씀하시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송인성 선생님, 윤용범 선생님, 정현채 선생님 등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주옥같은 comment를 듣는 소중한 기회였다.

집담회의 증례 선정은 3년차 몫이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35 mm film에 찍힌 사진을 모두 review하여 그럴싸한 case 후보를 선정한 후 chart를 신청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PACS를 이용하는 요즘의 집담회 준비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편해졌다는 것이 반드시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4) 개업가에서 삽입법을 배우다

전공의 기간에는 대학병원보다는 1,2차 병원 파견에서 더 많은 내시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한 심장전문 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에게 받은 가르침이다. 당시에는 vidoescope가 막 도입되기 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여전히 fiberscope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 병원에서도 fiberscope를 사용하고 있었다. Videoscope만 경험하신 분들은 잘 모를 수 있겠으나, fiberscope로는 후두를 보면서 pyriform sinus를 통하여 내시경을 삽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fiberscope는 blind하게 感으로 삽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부분은 내시경을 처음 배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 그 병원에 계시던 그 선생님은, 내가 내시경을 삽입하는 것을 보시더니 갑자기 내가 어떤 방법으로 삽입을 하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셨다. 약간 뚱딴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up을 걸고, 12-15cm 정도 들어가면 꿀꺽 삼키라고 합니다"라고 막연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게 알고 있는 전부였으니 더 자세히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게 아니네"라고 하시면서, 장장 15분에 걸쳐서 후두를 넘어가는 방법을 설명하여 주셨다. 내시경의 어떤 부위를 어떻게 잡고, knob는 어느 정도 당긴 상태에서, 어떠한 각도로 진입하여, 어디에 도달하면 어떤 느낌을 느껴야 하고, knob와 각도를 어떻게 조절하면서, 환자에게 어는 시점에서 어떠한 말로 협조를 구하고,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어떠한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고 ... 등등 다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 생생한 것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삽입법을 10번은 바꾸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사소한 것 같아도 관심을 가지고 꼼꼼하게 파고들면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을 수가 있구나. 내시경이 목을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이 이럴진데, 내시경 전체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인가..." 대충하는 내시경과 꼼꼼하게 하는 내시경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도 엄청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이후 필자도 내시경 삽입법에 대하여 오랜 기간 고민을 해 오고 있다. Fiberscope에서 videoendoscope로 기계가 바뀌면서 삽입법이 현저히 바꾼 것은 물론이고, 주로 사용하는 내시경 모델이 XQ230, XQ240, Q240, XQ260을 거쳐 최근 사용하는 Q260, H260으로 바뀔 때마다 삽입법을 조금씩 바꾸었다. 내시경 말단의 bending portion의 길이, outer diameter 및 flexibility에 차이가 있으므로 똑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환자의 나이에 따라서도 차이를 주어야 한다. 고령의 환자들은 인후부의 감각이 저하되어 있어서 모든 구조물을 확인하면서 들어갈 수 있지만, gag reflex가 심한 젊은 환자의 경우에는 다른 방식을 써야 한다.

내시경의 경험이 많은 환자와 처음인 환자에서도 검사에 대한 설명이나 삽입법 자체에 차이를 주는 것이 좋다. Acid regurgitation이나 heartburn이 있는 환자에서는 무리한 삽입을 하면 나중에 식도염에 의한 2차적인 변화를 관찰하기 어렵게 됩니다. 내시경 직시하에 1차 삽입을 시도하여 잘 되지 않은 환자에서는, 2차 삽입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저는 삽입방향을 환자의 right pyriform sinus로 바꾼다거나 blind insertion method를 사용한다. Blind insertion method는 일견 투박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순식간에 인후부를 넘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더 편해하는 방법이다. PEG 시술시나 중환자실 환자들의 경우에는 supine position에서 내시경을 삽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인후부에 대한 해부학적인 이해가 확실히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시경을 잡는 방법을 바꾸어 주어야 삽입이 쉽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여하튼 이 글에서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시경 삽입법 뿐만 아니라 내시경 시술의 모든 단계마다 정말로 많은 것들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파견 병원에서 배웠다.


5) 군의관 시절의 구걸(?) 내시경

2007년 초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포항에서 군의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위 계급장을 달고 사단 의무대의 중대장으로 1년을 근무하였는데, 소화기내과 의사의 identity를 가지고 있던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 정말로 이런 식의 조금 건방진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general physician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주어진 도구는 청진기와 chest X-ray,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혈액검사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였지만, 이 정도의 시설로도 대부분의 병사들을 치료할 수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걸어서 5분 거리에 포항병원이라는 군병원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후송을 해야 하는 환자가 발생하면 내가 직접 환자와 함께 포항병원에 갈 수 있었다. 당시 포항병원에는 오래된 flexible endoscope가 한 대 있었는데, 자주 씌이지 않고 있었다. 당시 그 병원 군의관의 허락을 得한 후 -- 군대에서 아직도 이런 표현을 쓰는지 궁금하다 -- 내가 데리고 간 환자의 위내시경 검사는 주로 내가 하였다.

반년 쯤 지난 후에는 사단의무대에도 flexible endoscope가 한 대 들어와서, 포항병원에 가지 않고도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여하튼 젊은 병사들인지라 위암이나 기타 심한 질환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십이지장 궤양은 드물지 않게 진단할 수 있었다.

속쓰림이나 복통으로 처음 사단의무대를 방문한 환자에게, cimetidine 1주일분을 처방한 후 증세가 완전히 호전되지 않아서 다시 찾아온 경우가 내시경 적응증이었다. 이런 환자에서 대강 3명 중 1명에서 십이지장 궤양이 발견되었다. 다소 높은 수치인 것 같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증세가 상당히 심해야만 사단 의무대에 찾아오기 때문에 1/3이라는 높은 진단율을 보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누구나 십이지장 궤양 환자를 발견하면 Helicobacter pylori 검사 및 치료를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이러한 치료법이 보편화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CLOtest를 하지 못하여 아쉽던 차에 마침 휴가가 있어서, 모교 내시경실을 방문하여 CLOtest kit를 구하였고 의무대에 돌아와 병사들에게 사용하였다. 내 자신의 정성으로 병사들이 십이지장궤양 재발로 고생하는 것을 막아주었다는 생각에 한 동안 무척이나 뿌듯해 하였던 기억이 난다.


6) 대장전문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배우다

레지던트 과정에서 S-결장경을 할 기회는 많았으나 대장내시경검사는 몇 번밖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대장내시경 삽입법 교육은 책을 통해서 이론을 익히고, 다른 분들의 시술을 뒤에서 보면서 흉내를 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친구들은 상당히 빨리 배우는 반면, 필자와 같이 평범한 수준의 눈썰미 밖에 되지 않는 경우에는 대장내시경을 익히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는 매우 느린 편이다. 배운 것을 확실히 익히자는 전략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군대 마지막 해를 서울지구병원에서 근무하였는데, fellow 과정에 들어가면 대장내시경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적지 않았다. 당시 대장전문병원의 내과의사로 근무하던 선배가 있어서 대장내시경 시술을 보겠노라고 연락하여 허락을 받았다. 대장전문병원답게 하루에 20개 전후의 대장내시경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내과의사 뿐만 아니라 외과의사들도 모두 대장내시경을 시술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5분에 한명씩 예약이 잡혀있는 schedule 표였다. 15분이면 대장내시경 검사 자체 시간으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병원에서는 15분 내에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용종이 있으면 모두 제거하고 결과기록도 남기고, 간혹 사이사이에 커피 한잔을 즐길 여유까지 가지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지금은 빠른 내시경보다는 바른 내시경을 추구하고 있지만, 당시 대장내시경을 배우는 입장에서 빠른 내시경이 퍽 부러웠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대장내시경을 fluoroscopy하에 시행한다는 점이었다. 납가운을 입고 fluoroscopy table에서 내시경을 하다가 대장내시경이 잘 들어가지 않으면 즉시 fluoroscopy를 켜는 방법이다. 어디에 어떠한 loop가 생겼는지 확인하고 적절하게 눌러주거나 자세를 바꾸는 등 조처를 함으로써 어려운 고비를 쉽게 넘기는 방법이다 (Fluoroscopy 하의 대장내시경은 일단 익숙해진 후에는 필요하지는 않지만, 처음 배울 때에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Fluoroscopy를 켜면 내시경 보조자가 loop를 보고 적당한 부분을 찾아서 즉시 눌러주면 내시경 시술자는 쉽게 loop를 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특히 보조자는 경력이 10년 이상이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여 내시경 시술의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좋은 보조자가 있으면 좋은 내시경의가 되기 쉽겠다고 느꼈다. 자신의 근무처를 떠나 다른 병원에 가 보면 항상 배울 것이 많다. 지금도 필자는 시간을 내서 다른 병원에 갈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신건성 선배님. 감사합니다.


7) 영원한 내시경 스승 Uemura

제대 후 fellow 과정 시작 전 1주일 정도 Uemura 선생님을 찾아 뵌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군대 3년차 가을, 서울에서 열린 Helicobacter 연구회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Uemura 선생님이 강의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이 계기였다. EMR 후 Helicobacter pylori 제균치료를 하면 위암 재발률이 떨어진다는 non-randomized study의 결과로 유명한 분이셨고, 나중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Helicobacter pylori 감염증의 natural history에 대한 longterm follow-up study를 발표하여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그 Uemura 선생님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당돌한 일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의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감명깊게 들었는데 며칠간 방문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흔쾌히 승락을 얻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에서 선생님에게 배우기 위하여 찾아온 의사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나에게 숙소를 제공하여 주셨고, Kure에 머무르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식사를 해결해 주셨다.

당시 Uemura 선생님은 Kure Kyosai Hospital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시골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셨다. Kure는 Hiroshima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로 마치 우리나라의 진해와 같은 軍港이다. Kure Kyosi Hospital은 Kure에서도 3번째로 규모라 하니 결코 큰 병원은 아니었다. 내시경 system이 두 개였다. 놀라운 것은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시행하는 모든 내시경검사의 결과를 본인이 직접 관리하면서, 꾸준히 정리를 해 나가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10년 이상 모든 환자의 자료가 쭉 정리된 file을 보고는 내 입이 쫙 벌어졌다. 많은 논문을 쓰시지는 않았지만, 몇 년에 하나씩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data를 발표하는 저력의 바탕이 바로 그 데이타였던 것이다. 작은 병원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검사를 시행할 수는 없었지만, 임상 데이타, Helicobacter pylori 검사, 조직검사 및 혈첨검사와 같은 몇 가지 간단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그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병원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기 마련인데, Uemura 선생님이 계시던 병원의 장점은 환자들이 follow up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더 크고 더 좋은 병원이 얼마든지 있고, 환자 volume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셨지만 Helicobacter pylori 분야에서 일본 최고의 대가가 Uermua 선생님이라는 점은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병원의 크기와 연구의 질은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임상연구는 작고,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병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Uemura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8) 주말이 없었던 fellow 시절

Fellow 과정은 그야 말로 정신없이 보냈던 기억이다. 내시경 배우기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연구에 참석해야 했으며, 환자관련 및 교육관련 업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말 많이 배웠다. 특히 의약분업 관련 파업기간 동안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다.

(1) 내시경에 관해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관련 학회의 학술대회/세미나를 닥치는 대로 모두 참석한 것이었다. 거의 모든 주말을 바쳐야 했지만, 바빴던 만큼 남는 것도 많았다.

(2) 스스로 검사를 시행한 환자 중 정상이 아니었던 증례의 사진을 꾸준히 모았던 것도 내시경 배우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역시 자신이 검사한 환자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환자는 우리들이 정성껏 치료해 드려야 하는 손님이면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는 선생님이 것이다.

(3) 국내외의 내시경 저널을 꾸준히 구독하였던 것도 좋았다. 특히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지의 case report들을 정말로 피와 살이 되었다. 내시경 배우기의 과정에서는 original article보다 case report가 훨씬 도움이 된다.


9) ESD를 배우러 다시 일본에 가다

Fellow 과정을 마치고 대학병원의 faculty로 근무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내시경 기법을 익히고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위암의 내시경치료법으로 1990년대 말 일본에서 개발된 ESD(endoscopic submucosal resection)은 내가 조교수로 발령을 받을 무렵인 2002-3년 경에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신규 staff으로서 ESD를 익혀야 한다는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지만 좋은 해결방법이 없었다. 국내에서 시술하는 병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일본 쪽의 논문에 실린 사진이나 간단한 comment를 참고로 나름대로 익혀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쉽지가 않았다.

강북삼성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의사로 근무하던 시기에 동경암센터를 잠시 방문하여 ESD를 본 적이 있었지만, 경험이 없던 상태였으므로 사실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뭘 봐야 할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대학병원의 faculty로 임명장을 받고 1년 정도 EMR의 기초 술기인 EMR-cap과 EMR-P의 경험을 쌓은 후, 드디어 일본의 동경암센터와 동경대학에 몇 주간의 연수를 갈 기회를 잡았다. ESD 경험은 몇 번에 불과하였지만, 두 번째 방문은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시술에 관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가면서 관찰할 수 있었고, 경험에 근거하여 나의 시술과 Gotoda의 시술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경대학의 Yahagi 선생님은 매우 인간적으로 대해 주시면서,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알아두면 좋은 tip을 많이 알려주었다. 동경대학에서는 국내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의사 한 분을 만나서, 외국인에게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숨은 비법이나 비밀도 많다는 점도 배웠다. 일본에서 보고 익힌 점을 문서로 만들어 귀국 후에도 두고두고 참고를 하였다.

책을 통하여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observation을 통하여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시작하기 전 1번, 몇 번의 경험을 가진 후 1번, 상당히 익숙해진 후 1번, 이와 같은 3번의 반복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왕도이다. 수년 내에 다시 한번 일본을 방문할 기회를 가지고 싶다. Yahagi 선생님. 감사합니다.


10) 우리나라 다른 병원 내시경실을 찾아가자

2007년 미국 연수 도중에 한 대형 병원의 내시경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내시경을 시작하기 전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고 monitoring을 하는 부분에서는 참고할 만한 내용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시경 시술에서는 거의 배울 만한 점이 없었다. 우리와는 의료환경, 환자, 치료 전략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시경 배우기의 가장 좋은 방법은 훌륭한 선생의 시술을 직접 보고, 따라 하면서, 조금씩 익혀나가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내시경을 배우기 위하여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임상 위내시경에 관하여 미국에서 배울 것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일본에서는 몇 가지 point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내시경 경험과 자신만의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을 방문한다면 꼭 보고 배워야 할 점들을 알아채기 어렵다. 초보자들이 일본을 방문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국내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여러 선생들의 시술모습을 꼼꼼히 관찰, 비교하면서 따라 해보는 것이 내시경 배우기의 지름길이다.

모방은 배움의 시작이다. 그리고 간혹 다른 병원을 찾아간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소화기 내시경을 전공 삼아 대학의 faculty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도 아직까지 다른 병원을 방문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시술장면을 견학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취미라고 생각하면 내시경도 해볼 만하다. 문제는 진지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진지한 마음으로 내시경을 대하는 사람이 훌륭한 내시경 의사가 아닐까. 내시경은 멋으로 할 일은 아니다. Doctors, Be Serious!


2. 시스템교육과 도제교육 - tutor를 이용하자

내시경에도 진입장벽이 있다. 처음 배우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순서는 있다.

1) 철학 혹은 적응증부터 배우자

내시경 술기를 배우기 전 스승의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내시경의 목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 내시경의 목표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3차 의료기관에서 위내시경을 주로 시행하는 입장인 필자로서는 "위장 질환으로 인하여 환자의 수명이 단축되거나 삶의 질이 감소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표다. 단지 어떠한 질환 혹은 이상소견의 발견에 지나친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쓸모 없는 삶의 질 감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별 의미없는 진단명을 듣고 난 후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자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주는 의미있는 소견을 놓치지 않고 발견하여 이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한 환자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면담한 후 적절한 검사를 권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치료 혹은 관리 방침을 권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수가의 하향평준화식 의료환경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우리 젊은 소화기내과 의사들에게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처럼 느껴진다.

선생의 철학을 공유하는 구체적 전략은 무엇일까?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내시경 시술의 적응증에 대한 이해를 들 수 있다. 이 짧은 글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단지 필요한 환자에서 필요한 간격으로 필요한 검사 방법을 환자의 입장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제교육, 그러나 시스템을 돌릴 수 없다

나는 내시경 교육을 시스템교육과 도제교육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시스템교육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교육모델이다. 일정한 프로그램이 있고, 좋은 교재가 선정되고, 충실한 강의 및 실습기회가 제공되며, 적절한 평가와 상벌을 통하여 feedback을 해 나가는 그런 방식을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시스템 교육은 매우 만족스럽다고들 말한다 (필자는 믿지 않지만...). 그러나 이론과 함께 실기의 비중이 매우 큰 분야에서는 시스템교육의 한계가 없을 수 없다. 내시경과 같은 매우 복잡한 시술을 함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review article이나 textbook이 가진 한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Thomas Kuhn의 History of scientific revolutions라는 흥미로운 책의 일독을 권하다). 실제로 여러 교과서를 살펴보면 전체적인 틀은 대강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 언급된 경우가 많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위내시경 분야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심하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접근법과 가까운 섬나라 일본에서의 접근법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조기위암의 내시경 치료에 대해서는 서구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심지어 "조기위암"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인되기도 한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과 우리나라의 교과서에서도 내용이 다른 예는 얼마든지 있다. 조기위암의 심달도 진단법, pit pattern의 유용성, 후두암의 내시경적 치료, Barrett 식도 등 임상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이처럼 다를 수가 있을까 의아해 진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어떤 선생님 아래에서 배웠는지, 어떠한 분야에서 일해왔는지에 따라서 전문가마다 견해가 크게 다른 부분이 상부위장관 내시경이다. 이런 실정에서 시스템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내시경을 배우는 초기에 시스템 교육의 문제가 극명하게 들어난다.

외과 영역에서는 대부분 3-4명이 함께 수술을 하기 때문에 초보가가 접근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수년간 선배의 손놀림을 보면서 조금씩 쉬운 것부터 배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한 수술과 실제 환자 진료를 위한 수술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의사 한 명이 외롭게 시술하는 우리나라의 내시경 환경에서는 외과의사와 같은 그런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다른 의사의 내시경 검사를 보면서 독학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실정이다. 각 의료기관 차원에서 내시경 교육을 위하여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외과 영역과 비교하면 거의 독학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한 경험을 쌓을 때까지 선생/선배의 감독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필자의 경우도 내시경을 배우는 동안 삽입부터 시술, 결과정리까지의 전과정을 지휘/감독을 받아본 적은 두세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도 매우 운이 좋았던 편이다.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내시경은 초기단계에 일정 수준에 올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우는 단계에 있는 내시경 시술자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홀로 검사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수준이란 대가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에서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의 보편적인 접근법을 이해하고 비슷한 수준의 진료를 행할 수 있는 능력과 (2) 자신이 속해있는 의료기관에서 자신에게 요구된 특수한 기술을 어느 정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을 단기간에 익히기 위해서는 농도 깊은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시스템교육은 특정한 상황에서 이용하기 좋은 지식보다는 보편적인 상황에서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교육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문제가 있다. 10년 후 훌륭하게 내시경을 시술하는 의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라면 시스템교육도 좋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 수개월 혹은 1-2년 내에 -- 일정 수준에 오른 내시경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농축된 경험이 1:1로 전달되는 도제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스템을 도제교육으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가능한 일도 아니다. 단지 현 방식에 도제교육적 측면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주장이다. 피교육자 스스로 과거의 방식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3) Integrity를 배우고 가르치는 도제교육

도제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이다. 병에 대한 개념, 진단, 치료 및 치료 후 경과관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틀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도제교육이다. 물론 이러한 틀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 더 좋은 연구 결과들이 인정되면, 그에 따라서 이러한 틀이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자신이 진료한 환자의 데이타를 스스로 꾸준히 모으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 관련된 분야의 최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특정 의사에게 여러 틀이 존재하여서는 안 된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기분에 따라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질환에 대해서는 하나의 틀이 필요한데, 이러한 틀 내부에서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1) 질환 자체에 대해서는 미국식으로 이해하고 있으면서 (2) 검사의 적응증은 한국식, (3) 내시경 시술 자체는 미국식과 일본식의 혼합, (4) 조직검사 결과 판정과 최종 진단은 미국식, (5) 치료 방식은 일본식을 선택하는 등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진료가 자신만의 문제라면 질병 이해의 틀이 흔들리더라도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의료는 환자와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선배의사로부터 후배의사로 그 전통이 이어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일관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틀 속에서 큰 혼란을 겪을 것이며 (여러 병원을 옮겨다니면서 서로 다른 의사들로부터 서로 다른 설명을 듣고 헷갈려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training을 받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질병의 진단 및 치료과정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도제교육이 동양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형태이거나, 과거의 교육방식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서구의 의학서적을 찾아보면 훌륭한 tutor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수도 없이 반복되어 나온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도제교육의 핵심은 훌륭한 tutor를 만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관성있는 틀을 가지고 있고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는 훌륭한 선생(나는 같은 의미로서 tutor라는 표현을 좋아한다)을 만나는 것이 내시경을 배우는 지름길이다.


4) 도제교육은 보는 것이다

도제교육의 시작은 많은 관찰이다. 우선 tutor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따라 하는 것이다. 되도록 tutor와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 남들 눈에는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늘 함께하면서 사소한 것까지 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스템교육이 강조되는 현재의 교육여건에서, 특히 바쁜 레지던트, 펠로우 기간에 정해진 스케쥴 이외로 따로 시간을 내서 tutor를 따라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Tutor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tutor와 함께 할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시경 검사실이나 회의실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래에서 환자 진료를 도우며 tutor가 어떤 식으로 진료를 하는가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식사를 같이 하거나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많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학회에서는 tutor 옆에 앉아 함께 구연발표를 듣고, 함께 poster를 보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은 정말로 영양가가 높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고 e-mail로 질문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으면 즉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tutor로부터 많은 것을 흡수하려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Tutor는 내 밥이다"라고 생각해보시라. Tutor의 모든 것을 빨아먹은 후에 그보다 더 훌륭하게 발전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닌가. Tutor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Training 기간 동안에는 통상 matching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외부에서 tutor를 정해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나의 tutor를 어찌 남이 정해줄 수 있겠는가. 1-2년의 기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여러 명의 tutor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하산할 때가 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치는 교육

개인적으로 도제교육을 선호하다보니, tutor로부터 개인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 같다. 도제교육은 짧은 기간동안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야 하는 기술이나 지식을 전달하는데 유용한 방법일 뿐이다 (내시경이 바로 그런 분야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치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도 지금 이 순간 내게 유용한 대부분의 지식은 책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들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치는 교육에 대해서는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Specialist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을 generalist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약간은 독특한, 그렇지만 배울 점도 많은 그런 사람이다.

내시경 분야에서도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Tutor로부터 기본적인 소양을 배운 후에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스스로의 한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내시경 자기 학습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비전통적인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인터넷

PubMed를 통하여 새로 발표되는 논문을 살펴보거나,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검색하는 능력은 의사의 기본적인 자질이 되었다. PubMed 이외에도 Google이나 Naver 등을 검색해 보아도 다양한 수준의 정보에 찾을 수 있다. 내시경과 관련해서는 Google의 이미지 검색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림을 살펴본 후, 그림이 포함된 원본문장 (Google의 표현임)을 찾아가 보면 의외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나는 stomachlee.pe.kr이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의사들의 훌륭한 개인site들도 많으니 찾아보기 바란다.


2) VOD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유행처럼 되어 있는 것이 강의장면 VOD 서비스이다. 각 학회마다 학술대회, 세미나, 심포지엄의 강의장면을 동영상으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미국 하버드 대학 MGH의 소화기 교육 site인 DAVE도 꼭 뺄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교육병원에서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staff lecture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Computer 앞에 앉으면 언제든지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지 잘 준비된 강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staff lecture는 더 이상 의미는 없으며, 앞으로 필요한 것은 Q and A 시간이다. 강의는 스스로 시간을 투자해서 듣도록 하고 함께 모여서는 언제나 질의 응답과 토론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3) e-mail 교육

1년 정도 e-mail을 통하여 근무하는 병원의 레지던트, fellow들에게 내시경과 관련된 정보를 주기적으로 보낸 경험이 있다. Comment를 하거나 질문을 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인 사람과는 비공개적인 e-mail을 통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주고 받는 기쁨을 가졌다. 많은 병원에서 내시경 영상이 PACS로 저장이 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image file을 생성할 수 있다. 궁금한 image를 경험이 많은 선생에게 e-mail로 보내서 의견을 듣는 것은 정말로 유익한 일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해외 학회나 단체에 가입하며 그쪽에서 발송하는 news letter를 e-mail을 통하여 받아보는 것도 좋다 (내시경 관련은 아니지만, 생명과학 전반에 관한 최신 정보가 담긴 BRIC (http://bric.postech.ac.kr)의 news letter를 권한다).


4) 학회지에 실린 논문의 교신저자에게 질문 보내기

과거에는 논문의 내용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공식적으로 편지를 발송해야 하였기 때문에 번거롭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신저자의 e-mail 주소가 공개된다. 간혹 e-mail로 질문을 보내면 의외로 자세한 답변을 받아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5) 우리 말로 번역된 일본 내시경 책

서구 의료의 영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의 정보에는 관심이 많다. 그러나, 상부위장관 내시경 분야에서는 일본의 의료수준을 무시할 수 없다. 기술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evidence-based medicine 적인 접근이 부족한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료를 많이 제공해 준다.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 원서를 읽을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으나,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행스럽게 일본에서 발간되는 내시경 책 중에서, 내용이 알찬 책들은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위와 장"에 실린 조기위암연구회 증례토의를 흥미롭게 읽고 있다. (번역본을 보고 있음) 필자는 제자들에게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 내시경 책을 가까이 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마시라. 손재주보다는 evidence-based medicine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6) 학회 기간을 이용한 외국 병원 내시경실 방문

최근 resident나 fellow 과정 동안 해외학회 참석기회가 늘고 있다. 배우고 공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해외에서 관광이나 회식에만 열중하는 구태를 반복하는 것 만큼 한심한 일도 없다. 학회에 집중하면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 많은 학회가 대도시에서 열리는데, 이 경우 가까운 거리에 반드시 큰 병원이 있기 마련이다. 내시경 관련 학회 기간에는 외국의 내시경실도 대부분 정상적인 진료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전에 해당 병원의 faculty에게 e-mail을 보내고, 학회기간 이전에 하루라도 내시경실을 방문하여 시술 장면을 관찰할 것을 권하고 싶다. 통상, 학회기간에 못하는 내시경을 학회기간 이전에 당겨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많은 시술을 관찰할 수 있다.


4. 나는 이렇게 내시경을 가르치고 싶다

1) 시스템 교육과 도제교육의 균형

내시경 초심자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에서는 반드시 양적으로 충분하고 질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알아서 배우라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의 연수처인 Seattle의 FHCRC (Fred Hutchinson Cancer Research Center) 지척에 위치한 University of Washington의 소화기내과 fellowshop training course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예가 될 만한다. (pdf file download) 내시경 교육 프로그램에서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은 (1) 초심자를 위한 orientation 강좌, (2) 초심자를 위한 실기 교육, (3) 다양한 증례를 경험할 수 있는 적절한 임상 스케쥴, (4) 내시경 집담회 (전형적인 증례 및 특이한 증례), (5) 병리집담회, (6) journal club, (7) staff lecture, (8) research meeting 으로 생각하고 있다. 각각에 대해서는 아래에 자세히 적겠다.


2) 초심자를 위한 orientation 강좌

앞서 내시경 배우기에는 상당한 정도의 진입장벽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외과의사가 되는 길이나 oncologist가 되는 길과 비교해 보면 명확해진다. 외과 수술은 그 특성상 group practice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4명 정도가 함께 시술을 하기 때문에, 초심자들은 3th assistant로 부터 시작하여 수년에 걸쳐 조금씩 지위가 상승된다. 2nd assistant를 거쳐 1st assistant가 되고 마침내 주요 수술의 집도의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역할의 변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Analogue적인 변화라고 부를 수 있다. Oncologist가 되는 과정도 비슷한데, 레지던트 1년차 때에는 병동에서 직접 order를 작성하면서, 응급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2년차부터 4년차까지의 training 과정에서 점차 oncologist로서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핵심적인 부분인 치료 방침 결정이나 약물선택의 과정은 fellow나 staff의 몫으로 되어 있다. 다음 단계에서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는지를 경험하면서 oncologist로 성장해 나가기 때문에 transition period에 겪는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내시경은 1명의 시술자가 중심이 되어 시행을 하는 검사이므로, 처음 배우는 과정이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학생 때 배운 것이나, 레지던트 과정의 경험이 내시경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며 거의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시경을 잡는 법부터, 삽입법과 관찰법, 소견을 기술하는 방법, 진단을 붙이는 법, 조직검사법 등등 모든 것이 신기하기 마련이다. 완만한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매우 높은 계단을 뛰어서 올라가는 격이다. 따라서 내과 레지던트의 일반적인 역할을 하던 중 내시경을 처음 시작하는 과정은 digital적인 변화이다. 물론 모든 내시경 교육 시스템이 digital적인 과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선진적인 시스템에서는 내시경 배우기도 analogue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레지던트 1년차부터 내시경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관찰에서 시작하여, 내시경 세척법이나 accessory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조직검사 forcep을 잡고 내시경 assistant의 역할을 하는 등 수년간 천천히 경험을 쌓아가면서 혼자서 내시경을 하게 되는 날을 준비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지만, 현실적 제약이 크다.

한 의사의 의견에 따라 종합병원의 레지던트 교육과정을 몽땅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문제 -- 내시경 교육 과정을 digital에서 analogue로 바꾸는 것-- 에 대하여 많은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 개인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노력은 피교육자 입장에서의 노력과 교육자로서의 노력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1) 진실로 내시경을 올바르게 배우고자 한다면 스스로 많은 정성을 기울일 것을 권하고 싶다. 의료현실과 묶여있는 우리의 의학교육 시스템에 안주한다면, 훌륭한 내시경의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해진 스케쥴 이외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내시경실에서 선배나 선생님, 혹은 tutor의 시술을 보고 도우면서 배우는 과정을 반복하라는 것이다. 스케쥴도 아닌데 쉬지도 않고 내시경실에서 배우려는 의욕을 보이는 제자를 어떤 선생이 방관하겠는가. 아마 자신이 점심을 먹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뭔가 하나라도 가르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2) 교육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초심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문제는 쉽지 않다. 모든 교육자들에게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라고 부탁할 수는 있으나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점 때문에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orientation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루 혹은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에 집중적이고도 실용적인 교육을 소규모로 진행하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Winter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내시경을 새로 배우는 레지던트나 fellow를 대상으로 이러한 과정을 시행하였는데 그 반응은 매우 좋았다. 여력이 있으면 참석인원을 조금 늘려서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3) 초심자를 위한 실기교육

아무리 많은 내시경검사를 관찰하였다고 하더라도 막상 자신이 처음으로 내시경을 잡으면 매우 떨릴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별다른 사전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의 내시경 시술을 옆에서 보다가 갑자기 선생이 내시경을 건네주면 엉겹결에 내시경을 빼는 것부터 경험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준비되지 않은 의사가 환자의 내시경을 잡을 수는 없다. 뭔가 많은 사전 과정이 필요하다. 내시경 입문서를 자세히 읽는 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을 배우기 위하여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동차가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고, 기본적인 도로법규는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은 기본적으로 선생이 해 보이고, 제자가 흉내를 내보고, 이를 선생이 봐주는 그런 과정으로 배우는 것이다. 내시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대상으로 연습을 할 수 없다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가. 우선 내시경 기구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시스템에 내시경을 걸고 여러 버튼이나 knob를 움직여 보면서 각각의 기능을 몸에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단계로는 인체 모형을 이용하여 내시경을 해 보는 것이다. 아직은 수백만원대의 고가이지만, 큰 규모의 내시경 교육기관에는 이러한 모형이 갖추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느낌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나 내시경을 삽입하고, 이리 저리 돌려보면서 위를 골고루 관찰하는 훈련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조직검사를 할 수는 없으나 조직검사 forcep을 병소로 접근시키는 훈련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몇몇 회사에서 computer simulator를 이용한 내시경 교육 system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현재 가장 유명한 제품은 GI Mentor II이다). 대장용종제거술, EST등 플라스틱 모델에서는 불가능하였던 보다 정교한 시술의 연습이 가능하다. 비행기 운전 훈련을 하는 simulator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면 된다. 그러나, 한 대에 거의 1-2억을 호가하므로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런 시스템을 갖춘 병원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내시경 시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시경 배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비록 가격이 비싸더라고 최선의 교육 system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와 같이 가능한 모든 교육자료를 이용하여 훈련을 한 후, 과거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선생 옆에서 내시경 시술을 도우면서, 내시경을 빼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4) 다양한 증례를 경험할 수 있는 적절한 임상 스케쥴

교육과정에 있는 젊은 의사에게 일주일에 몇 session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인가는 뜨거운 감자다. 이들을 의사로 보고 환자진료에 최대한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라면 가능하면 일을 많이 시키려고 할 것이다.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므로 이런 방식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이들을 피교육자로 본다면 환자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을 적절한 수준에서 억제하고, conference, 연구 및 독서 등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자 할 것이다. 나는 의술이 science와 art의 조화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내시경 배우기의 초기단계에서는 science보다는 art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 개월 동안은 기술에 중점을 둔 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통하여 기초적인 술기를 익히게 되면 보다 깊이있는 지식을 쌓으면서 스스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많은 내시경을 하다 보면 그 나름대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많다.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원리가 내시경 교육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시간 문제를 생각해 보자. 혼자서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고, 환자 앞에서 내시경을 잡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단기간에 일정 수준의 내시경 술기를 익히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자에게 적절한 내시경 스케쥴은 일주일에 3 session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자주 내시경을 하는 것은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지나친 심적인 부담을 받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1-2번은 새로운 술기를 익히기에는 너무나 간격이 먼 것이다. 시술을 통하여 얻은 感을 잊지 않고, 자신의 technique을 쌓아나가기에 적당한 간격은 이틀에 한번 정도라는 것이 개인적인 경험이다. 새로운 술기를 배우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이론 서적과 기술 서적을 공부하기 위해서도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매일 시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변증법의 원리를 잠깐 언급하였는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많이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내시경 다루는 기술과 의사로서의 경험이나 지식을 함께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0개 정도의 내시경을 시행하여 1예 정도의 위암이 발견되는 상황이라면 내시경 교육에 적합한 여건은 아니다 (무증상 성인에서 정기적인 위내시경을 시행하여 위암이 진단되는 확률이 0.1-0.2%이다). 한 session에 10개의 시술을 한다면, 1주에 30예, 1달에 120예, 1년에 1,500예를 하는 셈이므로, 위암이 진단되는 확률이 0.1%인 상황에서는 1년에 1-2예의 위암만을 보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시경을 배우기 위해서는 대상 환자 중에 의미있는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적절히 포함되는 상황이 필요하다. 준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소화기내과 검사실은 대부분 이러한 조건을 만족한다. 특히 중견 staff의 환자들 중에는 배울 것이 많은 환자의 비율이 아주 높다. 자신의 검사 사이사이에 선생의 환자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를 꾸준히 살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살아있는 교육이다.


5) 내시경 집담회

내시경 집담회는 내시경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모임이다. 자기 병원에서 진단되고 치료된 환자의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진단과정을 검토해 보고 최종 결과와 비교해 보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레지던트, fellow 교육을 받은 방식은 한 시간에 5-6 증례 정도의 사진을 보면서, 피교육자들이 돌아가면서 소견을 기술하고 진단을 붙인 후 staff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 조직병리 진단과 맞추어보는 순서였다. 한 증례가 5-10분 정도 논의되었는데, 여러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다소 깊이있는 토론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이 항상 아쉬웠다. 국내의 여러 학회에서 진행되는 집담회를 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2시간 정도의 집담회 시간에 10 증례 이상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증례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짧은 시간에 인상적인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진단이 드물고 흥미있는 증례 위주로 진행이 되므로, 마치 저널에 실린 case report 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방식은 내시경 고수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의사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본연수 기간에 '일본조기위암연구회'의 집담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매달 열리는 모임으로 동경지역 모임의 성격이 강하지만 분기에 한번 정도는 전국적인 모임으로 꾸며진다고 한다. 평소에는 500-6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전국모임인 경우는 3,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매우 규모가 큰 모임이다. 쉬는 시간 없이 3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증례는 6개가 준비된다. 사전에 많은 증례를 접수받아서, 심사를 거쳐 선정한 후, 각 병원의 중견 staff 들에서 조직병리 진단을 제외한 자료를 보낸다고 한다. 발표는 미리 자료(내시경과 UGI series가 대부분임)를 받은 중견 staff가 하게 되는데, 약 15분에 걸쳐 관찰된 소견과 그에 따른 해석 및 최종 impression을 말하게 된다. 이후 floor에서 여러 고수들의 의견을 들은 후, 최종적으로 병리결과를 보고 잠시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1 증례에 할당되는 30분이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활발하게 토론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집담회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1) 증례보고를 해야 할 정도로 드문 질환이 선정되는 예가 많지 않다. 이런 증례는 6개 중 1-2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평이한 증례로 채워진다. 조기위암인데 depth of invasion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식도암인데 표면의 모양이 불규칙한 경우, 위궤양과 위암의 구별이 까다러웠던 경우 등등이다. 이처럼 평이한 증례의 사진을 보면서, 해석해 나가는 point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집담회의 주된 목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전국에 있는 많은 내시경 의사들의 병소에 대한 접근법이 통일되어 가는 것이다. 이 점은 크게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특이한 증례는 개별 병원 내부의 집담회에서라면 모르겠으나, 학회에서 준비하고 많은 의사들이 참석하는 집담회에서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특이한 증례는 학회지를 통하여 발표되는 것이 좋고, 많은 의사들이 참석하는 모임에서는 평이하면서도 생각할 point가 많은 증례가 논의되는 것이 보다 교육적일 것이다.

(2) 한 증례에 할당되는 시간이 30분인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시경 집담회가 알아맞추기 quiz처럼 진행되지 않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장의 사진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기술하고,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 후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3) 한 증례를 논의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전체적인 집담회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한번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짧은 집담회를 자주 하는 것 보다는, 다소 길더라도 깊이가 있고 배울 것이 많은 집담회를 한번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집담회가 평일 저녁에 열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빈도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40대의 중견 staff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만하다. 그들의 발표를 통하여 충분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의 접근법을 엿볼 수 있으므로 매우 좋은 교육기회가 되는 것이다. 초심자들의 발표를 보면서 심사하는 기분으로 집담회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다.

(5) 매우 자세한 병리진단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다시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여러 병원의 내시경 집담회 중 히로시마 대학의 경우는 특이한 예이므로 언급할 가치가 있어보인다. 히로시마 대학 光學醫學科 내시경실에서는 하루에 50건 정도의 검사가 이루어진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경에 내시경 집담회가 시작되는데, 지난 주에 검사한 모든 환자의 사진을 함께 검토하는 시간이었다. 정상이거나 특이소견이 없으면 순식간에 넘어가고, 이상이 있으면 잠시 사진을 보면서 의견을 듣고 조직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통상 2-3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연초에는 새로 내시경을 배우는 사람이 많아서 12시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 화요일에는 내시경이 평소에 비하여 반정도 밖에 하지 않고 외래도 거의 없어서 12시가 넘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히로시마의 방식은 양과 질을 모두 추구하는 스타일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과 긴 시간을 함께 할 정성이 있는 staff가 필요하다는 점이 제한점으로 보인다. 히로시마대학의 경우 Tanaka라는 유명한 colon endoscopist가 boss인데 내시경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여, 월요일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서, 간혹 아래사람들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았다. 안되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여하튼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내시경 집담회를 준비함에 있어 증례의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간혹 fellow나 resident에게 증례준비를 전담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흥미롭거나 특이한 환자는 해당 staff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내시경 집담회에 올릴 증례를 모으는 방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의료진들이 흥미로운 증례가 있을 때 쉽게 등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6) 병리집담회 (pathology conference)

병리집담회는 병리의사를 중심으로 내과의사, 외과의사, 방사선과 의사 등이 모두 모여서 환자에 대하여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해가는 시간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입장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집담회가 바로 병리집담회이다. 간혹 한 병원 내에서도 과에 따라서 질병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연구자의 입장으로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환자를 진료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한 골치거리이다. 예를 들어,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외과로 환자를 의뢰하였는데 외과의사가 수술을 꺼려하거나, 반대로 외과에서 내과로 내시경치료나 항암치료를 위하여 의뢰하였는데 내과의사가 머뭇거리는 경우에 환자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연관된 여러과의 의사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을 하는 시간으로 병리집담회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피교육자의 입장에서도 여러 staff들이 어떠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내시경 소견과 병리소견을 비교해 볼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7) Journal 읽기와 journal club

Academic field에서 지식의 평균 반감기는 7년이라고 한다. 아무리 앞서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관련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따라잡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해당분야의 최첨단에 서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가장 앞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흔히 학회나 심포지엄에 참석하면 최근 연구 경향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학회라는 것이 시간적인 제한이 크기 때문에 충분히 공부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최근에 나온 저널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이 정보에 뒤지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신 정보를 구하기가 다소 어려운데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이 문제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최근 의학잡지들이 논문 접수부터 출판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하여 경쟁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니다. 문제는 저널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은 읽어볼 필요가 없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7-1) 정기적으로 PubMed를 검색한다. 자신의 item과 관련된 key word 몇 개를 선정하여 정기적으로 PubMed를 검색을 하면 대강 중요한 논문을 따라잡을 수 있다. PubMed에서 검색되는 abstract를 다 읽을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제목만 살펴보아도 (1) 넘어가도 될 것, (2) 결론 정도는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3) abstract 정도는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 (4) 논문 전체를 찾아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을 것 등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대강 2주에 한번 간격으로 gastric cancer, stomach cancer, endoscopic mucosal resection, 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 정도의 key word를 입력하여 검색되는 논문을 살펴보고 있다.

7-2) 논문을 구독한다. 인터넷이 너무나 발달되어 이제는 더 이상 종이에 인쇄된 논문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은 인터넷이고 책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저널을 통해서 의학잡지를 검색해 보고, 같은 잡지를 다시 한번 책으로 읽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대강 넘겨보면서 감을 잡는데는 인터넷보다는 책이 훨씬 도움이 된다. Editorial, review 등도 눈에 잘 들어오고, table이나 figure를 대강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과거에는 의과대학이나 병원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신간 의학서적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였지만, 최근에는 도서관에서도 전자저널만 보고 인쇄된 책은 구독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다..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다. 결국 개인적으로 중요 저널을 구독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나는 Gastroenterology, Americal Journal of Gastroenterology, Endoscopy, 위와 장 정도를 구독하고 있고 국내의 관련 학회지들을 보고 있다. 책을 보관하지는 않고 있다. 한번 본 후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전자저널을 이용한다.

7-3) 전자저널을 살펴본다. 책을 구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양에서 출판된 책이 내 손에 배달되기까지는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구독하고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전자저널을 꼭 보는 것이 좋다. 구독하지 않고 있지 않은 책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15-20개 정도의 저널 list를 만들어 follow up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Gastrointestinal Endoscopy (ASGE 잡지로 내시경하는 사람은 반드시 보아야 하는 bible), Digestive Endoscopy (일본에서 나오는 영문 내시경 잡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Gut, Journal of Clinical Gastroenterology 등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7-4) 내시경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review나 original article 못지 않게 case report나 interesting case, 임상 화보 등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꾸준히 보고 있으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비슷한 환자가 오기 마련이다. 대부분 자세히 읽을 필요는 없지만, 대강 진단명을 익혀두고, 사진을 눈에 발라두는 정도는 권하고 싶다.

Journal club이 운영되는 것을 살펴보면 소수의 저널을 깊이있게 읽어나가는 방법과 많은 수의 저널을 빨리 훑어나가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시간에 2개 정도의 논문을 선정하여, 비교적 자세히 분석해 보고 충분히 토론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발표하는 사람에게는 introduction 부분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해 올 것을 권하고 싶다. 주요 저널에 실리는 논문은 대게 관련된 분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세부 전공분야가 아니면 introduction만 읽어서는 충분히 알기 어렵다. 따라서 발표하는 사람은 관련된 논문들을 공부하여 어떠한 배경에서 이런 논문이 나오게 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정리하여 알기 쉽게 전달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8) Staff lecture

학회나 외부강사 초청강의에서는 첨단지식에 관한 내용이 많으므로, 내시경 초심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혼란을 주는 수가 많다. Academic한 면에서 흥미가 떨어지더라도 기본기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내부 모임에서 다루는 것이 좋다 (기본에 대한 내용은 강의를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쉬운 내용을 강의하면 자신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첨단은 첨단이고 기본은 기본이다). Chief review 혹은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제목을 나누어주고 스스로 정리하여 발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 온다고 하더라도 경험부족에 의한 한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Comment를 통하여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충분한 제목도 있지만, 차라리 경험이 많은 staff가 충실한 강의를 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주제도 있다.

주입식 교육을 전근대적인 방식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충분한 사람에게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주입식 교육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 기본적인 것은 강의를 통하여 습득하고, 보다 구체적인 부분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기본적인 개념을 잡기 위하여 이 책, 저 책을 전전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staff lecture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년전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된 이후부터 내시경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여 staff lecture를 해 오고 있는 제목은 아래와 같다. 가능하면 매년 같은 제목의 강의를 반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매년 새로 내시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주제는 여러번 듣는 것이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9) Research meeting

앞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으로 주요 저널에 실린 논문에 대하여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논문을 잘 읽기 위해서는 스스로 연구를 해 보는 것이 좋다. 연구를 기획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분석하고 논문을 써 보고 저널에 투고하고 출판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중요시하는 점은 논문만 보면 아주 쉽고 간단명료할 것 같은 결과도 사실은 보편화시키기 어려운 내용인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제한적인 inclusion과 exclusion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부분은 대충 넘어가고 결론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논문이 적지 않다. 스스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논문들의 제한점을 간파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논문의 결론만을 보고 자신의 환자들에게 엉뚱하게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는 선생의 경험과 제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경험많은 연구자의 방향제시가 없이는 좋은 연구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선생들의 연구경험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research meeting이다. PI와 연구자가 1:1로 만나서 논의하는 방식부터, lab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commnet를 주고 받는 방식까지 모두 research meeting이다. 나는 PI와 연구자가 computer 앞에서 data를 보면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검토하며 향후 계획을 정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5. 내시경 전문가 혹은 내시경 분야의 scientist가 되기 위하여 익히기를 권하는 program

1) Powerpoint: 공개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 받는 기본 도구. 상당히 잘 익혀두어야 한다. 모든 기능을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으나 자신이 사용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효과적인 presentation 만큼 자신에 대한 홍보효과가 뛰어난 것은 없다. 나는 단순한 design을 사용한 (소속기관의 사진이 들어간 복잡한 화면은 presentation을 광고로 만든다. 절대 피해야 한다) 통일된 형식의 clear한 powerpoint 원고를 좋아한다. 동영상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잘못된 동영상은 발표를 엉망으로 만든다. 잘 된 동영상은 presentation을 그럴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깊이 있는 진지한 강의에는 적합하지 않다. 수년 전부터 필자는 동영상과 이별을 하였다) animation도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있다 (follow up 사진과 같은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회나 집담회에서 엉터리로 만들어진 powerpoint file로 발표하는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수년 전에는 아주 희미한 연두색 바탕에 흰 글씨로 작성된 원고를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는데, 며칠 전에는 오렌지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고를 보고 심한 두통을 참아야 했다. Powerpoint 원고작성의 기본과 design의 기초적인 개념은 누구나 공부해야 하는 핵심중의 핵심이다.

2) Excel: 모든 data 정리의 기본인 spreadsheet 프로그램. 상당히 잘 익혀두어야 한다. 간단한 통계도 가능하다. Access와 호환성도 뛰어나다.

3) Word: 모든 원고작성의 기본. 모든 영어 논문은 Word로 작성되어야 한다.

4) Photoshop (또는 Photoshop element): 내시경 영상 자료를 관리하기 위한 기본 도구. Photoshop 정식 version은 기능이 지나치게 많을 뿐더러 가격도 비싸다. Digital camera를 사면 번들로 끼워주는 Photoshop element를 쓰면 충분하다. 그래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래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내시경 사진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높은 사양의 digital compact camera 혹은 낮은 사양의 digital SLR을 구입하여 자주 사용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Digital camera로 얻은 digital image file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내시경 사진을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5) Access: Interesting case 관리나 연구용 자료입력에는 access만큼 좋은 database program도 없다. 기본적인 programing을 익혀두면 더없이 좋다. 하루만 투자하면 된다.

6) EndNote: Word를 이용하여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도구. Reference를 붙여 text를 정리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논문을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7) GraphPad Prism: Excel이나 Powerpoint로는 어려운 예쁜 그래프를 만드는 소중한 도구. 대부분의 간단한 통계도 가능하다.

8) [optional] Adobe illustrator: 베지어 곡선을 이용한 vector 기반의 graphic을 위한 표준 도구. Raster (=bitmap) 기반인 사진의 한계를 넘어서 graphic적인 요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익히는 것이 좋다. 필자는 Powerpoint에서 만든 image를 논문제출을 위한 고화질의 TIFF로 변환시키기 위한 중간 단계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Powerpoint --> Adobe illustrator --> Photoshop 의 순서가 보통 이용된다). Auto-tracing도 유용하다.

9) 통계프로그램은 더 이상 익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과거에는 SPSS를 추천하였다. SAS보다는 배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Excel이나 Prism의 통계기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으므로 더 이상 통계전용 프로그램은 필요하지 않다. Excel이나 Prism으로 가능하지 않은 특수한 통계를 해야하는 경우는 통계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설혹 통계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필자도 desktop과 laptop에서 SPSS를 지워버렸다. 완벽한 통계를 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통계에 대한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고 Excel이나 Prism으로만 통계치를 구하자. 그 이상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통계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이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대부분 불법프로그램일 것이다. 불법프로그램이라면 당장 지우고 사용하지 마시기 바란다. 좋은 논문 하나 쓰고 난 후 수백 혹은 수천 만원의 벌금을 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6. 맺음말

내시경을 배우고 있는 4년차 전공의로부터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Fellow 선생님과 matching으로 내시경을 배우고 있지만, 뭐가 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병소인지도 확실하지 않을 뿐더러 뭔가 발견되면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그냥 몇 개의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전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Fellow 들도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Generalist(=resident)에서 어느 날 갑자기 specialist(=fellow)가 되었을 때에 느끼는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온갖 decision making에 관여하고 resident를 가르치고 연구도 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junior faculty가 되었을 때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어떤 일에나 일관성이 없으면 혼란이 발생한다. 일관성 부족으로 혼란이 발생한 대표적인 분야가 우리나라 위내시경 분야이다. 미국은 위내시경 분야에서 후진국에 가깝다. 그렇지만 서로가 공유하는 진료의 틀이라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 결코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만, 미국이라는 의료현실에 적합한 나름대로의 모델이 있는 것이다. 진료, 교육 및 연구를 모두 통합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미국과는 전혀 다르지만 일본의 위내시경 분야도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다. 일본이라는 의료환경에 적합한 위내시경 진료, 교육 및 연구 모델을 꾸준히 개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지라도, 일본 내부에서는 모든 의사들이 공유하는 모델이 있으므로 혼선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소한 의견차는 있겠으나 전체의 틀은 견고하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의사들이 질환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은 서구적이다. 미국 의학을 모델로 미국에서 공부한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였기 때문에 한마디로 미국식이라 하겠다. 그 결과 evidence-based medicine을 최상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내시경 분야에서 EBM적 시각에서 인용할 만한 data는 거의 없다. 매년 소수의 clinical study가 발표되고 있으나 연구의 수준의 매우 낮다. 의학적 증거 개발의 기본인 bias없는 환자의 선택과 randomization에 문제가 없는 연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EBM 입장에서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 없으면 이 보다 낮은 수준의 연구에 의존해야 하지만 위내시경 분야에서는 이 또한 믿을만하지 못하다. 미국에서는 대장내시경에서의 경험을 끌어다가 위내시경 진료에 이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non-sense에 가깝다. 대장과 위는 너무나 다른 organ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적 시각을 가지고 위내시경을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위내시경은 일본식에 가깝다. 미국의 위내시경에서 배울 것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의 경험을 배운 결과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질환의 분포가 일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위암이 많고, 특히 조기위암이 발견되는 예가 많으므로 (미국에서는 조기위암이라는 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의사들의 경험이 참고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일본의 의학이 서구의 의학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EBM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을뿐더러,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이어지는 도제교육의 전통이 매우 강하다. 진료에 필요한 많은 지식이 데이타나 책을 통하지 않고 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스승에서 제자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소화기과 레지던트가 되면 한두명의 스승을 적어도 3년간 거의 매일 따라다니게 된다. Fellow 과정까지 한다면 거의 5-6년을 한두명으로부터 집중적인 지도를 받는다. 스승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드물다. 우선 배우고 본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하산할 무렵에는 거의 스승의 copy품이 되어 나온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Science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참으로 엉터리같지만, 내시경이라는 art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점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일본에서는 내시경에 대한 단행본이 매년 수십권 출판된다. 그렇지만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주제가 두루 정리된 책은 없다. 도제교육으로 전달되고 있는 부분은 책에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본 책을 열심히 읽어도 일본 내시경교육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한국적이다. 대부분의 내과 레지던트가 분과전문의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general physician을 만든다는 방침아래 4년간 rotation을 하게 되어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내시경 술기를 익히게 하는 것은 내과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다양한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명제아래 레지던트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특히 내시경과 같은 분야는 한 명의 선생에게서 긴 시간동안 지도를 받는 편이 좋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한달 이상, 아니 단 며칠간이라도 집중적으로 가르쳐 본 레지던트가 없다. 내가 fellow 과정에 있을 때, 한명의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를 두달간 내시경 지도를 한 경험이 전부이다. 물론 그 당시 효과는 매우 좋았다. 2달 동안 집중적인 과외교육을 통하여 2-3년간 내시경을 배운 사람보다 실력이 좋은 내시경의사를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간혹 레지던트 과정에서 많은 수의 내시경을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통상 충분히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진료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내시경 진료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스타일로 내시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미국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니다. 솔직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토론한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 나올 법도 하다. 한두 병원에서만 잘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모두가 잘 해야 한다. 가면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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